[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3)
  • 경남일보
  • 승인 2017.11.0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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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3)

그러나 기역자로 굽어진 허리며 당뇨병과 고혈압 관절염 등에 공략 당하는 시골 늙은이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 집안의 지도자들은 노쇠했다. 그 늙은이들이 장애인 자식 내외와 생거미떼 같은 손주 여러 명을 어떻게 키워낼지, 아팠던 걱정도 그들의 생활을 눈으로 직접 보는 동안, 동물도 식물도 자생력을 갖고 있는 법인데 하물며 인간의 자구책이랴. 자위가 왔다.

양지는 또 한 번 사람이 사는 여러 문턱을 자신이 넘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은 넓다. 외양은 비슷할지 몰라도 인간의 내면은 너무 오묘한데 감히 자신의 잣대로 재단할 엄두를 냈다는 것이 어리석고 부끄럽기도 했다. 염두에 가졌던 용남언니의 생활에 대한 선입관만 해도 그랬다. 어릴 때 보았던 대로라면 언니는 하마 못쓰게 망가졌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타인을 의식하고 신경을 쓰면 저도 몰래 씰그러뜨려지는 안면근육과 함께 말하는 동안 주르르 흘러내리는 침, 마음을 배반하며 함부로 뒤틀려 흔들거리는 팔다리만 제외한다면 그녀는 여느 튼실한 농촌 아낙네 못지않게 틀이 잡혀 있었다. 더구나 양지를 놀라게 한 것은 제 엄마의 입귀에 흐르는 침이며 눈물 따위를 더럽게 여기지 않는 살갑고 다정한 모습으로 쓰다듬는 아이들의 행동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은 제 엄마의 차림이 남과 비교해서 조금만 쳐져도 화를 내며 숨어버린다는데 이 아이들의 마음 씀에는 틀 잡힌 안정감이 배어난다. 장애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힘들었을 유년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어느 아들의 아름답던 모습도 되살아났다. 장현동 오빠네의 아들과는 다른 행성의 존재처럼.

가족들이 다 모여 들지 않은 시각이라 어수선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집안은 조용했다. 얼추 고목이 된 감나무 밑에 놓인 평상에 양지가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고 꾸불텅 뒤뚱 불안한 걸음으로 용남언니가 다가왔다. 아까 마루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긴 세월의 거리를 좁히느라 당황해 보였던 표정이 퍽 진정이 된 것 같았다. 용남은 들고 온 부채를 양지에게 건네주고 옆자리에 앉더니 바쁜 사람을 어려운 걸음 시킨 미안함으로 먼저 말문을 텄다.

“나는 암시랑토 안한디……. 큰 아아아……. 지직장서 무요오 진찰인가 ㅤ무엔가 나와서…….”

어눌한 언어의 골자는 아이들께 떠밀리다시피 병원에를 갔고 거기서 콩팥이 완전 못쓰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시키지도 않은 짓을 아들이 나서서 했다는 거였다. 미안쩍음의 표시인지 용남언니가 슬그머니 양지의 손을 끌어 잡기도 하는데 그 손은 마음대로 살갑게 양지의 손을 잡지 못하고 자꾸 뒤틀려나가곤 했다. 어쩌다 잡힌 손이 묵직한 상대방의 손아귀 속에서 땀으로 젖자 양지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척 슬그머니 손을 뽑아냈다. 많이 아는 척 잘 난 척 하고 살았던 깐으로는 너무 무관심하게 내 몰라라했던 혈육이라 선뜻 정감도 붙지 않고 버성겼다.

“아이구 사제양반 어디 기신지 몰라 한 참 찾았네.”

조리치마를 차림을 한 용재의 할머니가 머리에 썼던 업수건을 벗어 상체에 묻었을 먼지를 털면서 다가왔다. 삶은 감자를 양푼에 담아 안고 경미가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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