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페이지] 소녀와 할머니 (3)
[역사페이지] 소녀와 할머니 (3)
  • 김지원
  • 승인 2017.11.1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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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서 있는 소녀상’과 희움역사관의 기억
 
거제문화예술회관 앞 소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바다 건너를 응시하고 있다.
“거제 소녀상은 지역 시민단체의 주도로 세운 최초의 소녀상입니다. 서 있게 된데는 3가지 이유가 있는데,…”

김운성 작가는 거제 ‘서 있는 소녀상’에 대한 사연을 이렇게 털어놨다. 당시 일본이 전쟁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 제9조 수정에 나서며 다시 군사 대국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따라다녔다’는 내용이 기술되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최초로 추진됐던 글렌데일시 소녀상에 대한 일본측의 격렬한 반대가 그 이유였다는 것이었다.

위안부 기림비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던 거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추모비 건립위원회(상임대표 박명옥)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 김운성·김서경 조각가와 협의를 통해 기존 앉아 있는 소녀상 대신 ‘서 있는 소녀상’을 세우게 됐다. 일본의 역사 왜곡 움직임을 앉아서 두고 볼 수 없는 심정을 담은 소녀상의 두번째 디자인으로 탄생한 것이다.

결국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를 수정했고, 교학사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왜곡된 내용이 수록됐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거의 없다는 점은 위안이 됐다. 일본계 주민과 일본 LA 총영사까지 나서 강력하게 반대운동을 벌였던 미국 글렌데일시 소녀상은 미국교민들과 연방 하원의원 등의 노력으로 성공리에 제막행사를 가졌다. 2013년 7월, 글렌데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한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이후 두번째로,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세워진 소녀상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고양시가 세운 소녀상에 이어 지역 시민단체의 주도로 거제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2014년 1월17일 제막한 거제시 ‘평화의 소녀상’은 장승포동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공원에 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맑은 날에는 일제강점기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갔던 관부연락선이 건너던 현해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거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추모비 건립위원회는 2013년 7월부터 모금운동에 들어가 6개월여간 4298만890원을 모금했다. 통영지역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도 100만원의 성금을 보탰다. 개인은 물론 지역의 초중고 학교, 시민단체, 특히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같은 30여 곳 기관단체에서도 모금활동에 동참했다. 거제시에서도 1000만원을 지원했다.

1.6m 높이의 소녀상은 청동 소재로 앉아있는 소녀상과 같이 빈의자와 검은 대리석 바닥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비문에는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군 “성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이 땅의 여성들의 한 맺힌 역사를 함께 기억하며, 다시는 전쟁과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인권과 평화가 넘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거제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라는 내용이 새겨졌다.

서 있는 소녀는 어깨 위 ‘평화의 새’를 두 손에 품고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영혼을 달래고 있는 모습이다. 바람 부는 날,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소녀상 옆 빈 의자를 한번쯤 찾아가볼만 하다.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일렁이지만 소녀의 눈빛은 의연하다.



 
거제 평화의 소녀상 아래 새겨진 비문.


비문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되던 당시는 ‘정신대 근로자’와 혼동해서 쓰였다.

대구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록을 담기 위한 역사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인순 관장을 찾아 위안부피해자에 대한 정확한 명칭을 물어보았다. 군 위안부는 정신대 근로자와는 다른 여성으로서의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를 지칭한다. 정신대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바로 잡았던 명칭은 해외에서는 ‘군 성노예’로 정확한 의미를 담은 표현을 쓰고 있다.

실제로 ‘위안부’라는 명칭은 ‘위로를 하는 역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일본군의 여성인권 유린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으나 그간 피해자 할머니들 스스로도 ‘성노예’라는 표현에 자유롭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계속적인 증언과 사회운동을 통해 스스로의 피해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성노예’라는 표현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구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전국에서 4번째로 세워진 위안부 자료 역사관이다. 대구시 중구 중부경찰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2015년 12월5일 개관 당시 이용수 할머니 등 대구, 경북지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4분이 참석해 감동을 더하기도 했다.

희움역사관 역시 2009년 처음 일본군 위안부 자료교육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시작되던 무렵에는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라는 명칭이었다. 이후 ‘희움(희망을 모아 꽃피움)’이라는 뜻으로 바뀌어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브랜드를 탄생시킨 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역사관 건립이라는 사업을 성사시켰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씨가 차고 나온 팔찌가 바로 희움 브랜드다. 희움 브랜드는 아이돌그룹 에이핑크, 애프터스쿨의 멤버들이 사용하면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연예인 팬덤도 매출에 상승곡선을 그려주지만, 소비자들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표현하는 의미로 희움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무역이나 공정여행을 이용하는 것 같은 일종의 사회적 소비의 한 형태로 희움이 상징적인 브랜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희움 브랜드는 의식팔찌 뿐만 아니라 에코백, 양말 같은 소품과 노트류의 문구제품도 판매한다. http://www.joinheeum.com/

희움은 판매수익금과 시민모금을 통해 역사관 건립에 나섰다. 이인순 대표는 “기금이 얼마간 모였을 때 부지를 샀다. 부지를 매입하자마자 시민들 사이에서 정부, 지자체는 뭘하느냐 하는 주장이 일면서 이후 여가부에서 2억, 대구시에서 2억을 지원받았다. 총 비용은 14억이 들었다” 라고 역사관 건립 과정을 설명했다. 장소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말로 역사관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전한 이 대표는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오기도 하고, 학교에서 단체활동을 나오거나, 일반 사회단체들의 관람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희움은 또 하나 의미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과거사와 관련 청산, 해결의 원칙들이 국제 기준이 마련되어 기준에 맞춰서 하는게 맞다. 한일간에 아무리 좋은 합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들이 다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며 “희움에서는 아시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시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희움은 올 8월 동티모르 피해자를 위해 2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생존자 지원기금 전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한국군에 의한 위안부 피해에 대한 지원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더니 이 대표는 “그 문제도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지원하는 분들도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조금 더 확대시켜 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희움역사관은 1926년 건축된 목조 2층 건물을 외관을 살려 리모델링 해 근대건축물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1층 맞이방과 전시실, 2층은 교육실과 옥상마당으로 구성됐다. 1층에는 계단 아래에 위안부 숙소 공간을 재현해 놓았는데 들어가 보지 않으면 그 감상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참혹함이 숨어 있다.

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위안부 증언 영상이 재생되고, 2층에는 아시아지역 피해자들 기리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지난 11일 또 한분의 위안부 피해자가 별세했다. 이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해결을 보면 정말 좋겠지만, 생존자가 한 분도 안 계신다 하더라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피해자와 가해자간 합의가 이뤄지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남아 있는 우리가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무를 가지면 된다.”

김지원 기자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거제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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