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585)
  • 경남일보
  • 승인 2017.12.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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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는 친구하고 행망 없이 같이 놀다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오락실인가 어딘가 그런 데서도 시간을 보내는 갑더만 똑 서방이 아니라 못된 짓한 머슴새끼 나무라드키 안달복달 하니깨 맘 편하게 집에 안 들어 온다. 그러니까내 남자는 또 내가 남잔데 싶어서 성깔 부리고 밖으로 나돌라 안 카나.”

“그럼 결론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꺼?”

“그러게? 어느 새 나도 늙었고 영감도 죽고 없으니 실험 해볼 데도 없고, 흐흐흐……. 그건 나도 모르겠다.”

말의 흐름이나 어투를 들어보니 현태의 어머니도 이제 팔팔하던 그때 그 여사님은 아니었다.

“전에 접붙이는 달인이시라고 자칭 하셨는데 지금도 그 일 하십니꺼?”

“몸도 시언찮고 눈도 어둡고, 지금은 안한다. 그렇지만 일손이 딸릴 때는 쬐꼼썩-. 그런데 갑재기 그거는 와 묻노?”

“인생론까지 곁들여서 해주신 말씀이 참 인상 깊었거든요. 어머니들 세대의 인내와 딸 세대의 지식과 슬기를 접목할 수 있다면 세상 참 풍요해질 거라고……. 그 달인의 철학과 기술로 안 되는 일 없이 잘 해내실 것 같았는데-.”

“말은 되네. 다 이자뿐 걸 다시 끄잡아내는 이유가 뭐꼬. 그때는 니부터 그리 탐나는 딸은 아닌갑던데 우짜꼬.”

얼핏 들으면 서로 시빗거리를 주고받는 것 같지만 맥이 통하는 말장난이다. 그러다 문득 주기가 오른 현태 어머니가 주먹으로 상을 쥐어박으며 갑자기 흐느꼈다.

“아이고 현태야, 어데 가고 니는 없노. 여게 이 사람이 왔는데. 생각이 영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콱 목사리 끌고 와서 같이 살지 그랬나.”

아들이 첫정을 쏟은 사람이라는 깊은 상념으로 치솟아 오른 슬픔인거였다. 양지는 그녀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단으로 가득 채운 술을 현태어머니의 손에다 들려주었다.

“술병이 비었다.”

거꾸로 들고 빈병을 두드려보던 현태 어머니가 다시 술을 가지러 갔다.

저 노인네가 어쩌면 내 시어머니가 되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지금 이런 상태의 관계라면 선 그어놓고 경계할 것도 없는 큰 산인 것을 지레 겁을 먹었던 것도 같다. 얼굴을 때릴 듯이 갑자기 앞에 놓인 술잔이 뛰어올랐다. 양지는 술잔을 피하다 그만 옆으로 쓰러졌다. 몽롱해지는 눈으로 푸른 하늘이 들어오더니 그녀를 감싸면서 아늑하게 내려덮었다. 현태 씨, 자기 집에 내가 왔어. 내가 이렇게 올 줄 나도 몰랐어. 양지의 입에서 술에 전 한숨 한줄기가 푸, 하고 새나왔다.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걸까. 썰렁한 한기에 몰려 눈을 뜬 양지는 황황하게 자신을 수습하며 평상에서 일어났다. 주책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내가 찾아와서 술에 취해 누워있었어. 양지는 가방을 챙겨들고 평상 밑에 있는 구두를 꺼내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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