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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출신 항일투사 3인 서훈 신청

기사승인 2018.02.19  09: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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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전석순·정의용·최알밤 관련 문건 발굴

하동 출신으로 일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전석순선생 등 3인의 항일행적이 발굴됐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과 김희곤 자문위원은 국가기록원과 하동군 고전면사무소 등에서 전석순(1900~1954) 선생과 정의용(1888~1956), 최알밤(?~1919)선생의 항일행적을 3·1운동 99년 만에 발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고 19일 밝혔다.

정 소장은 “이번 문건은 김희곤(전 하동군농민회장)씨의 조부 김성옥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하동학생 3·1독립운동을 주도한 전석순이 일본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펼치다 옥고를 치른 내용 등 3인의 항일행적을 함께 찾게됐다”고 말했다.

문건에 따르면 하동군 고전면 출신인 전석순은 1927년 3월 도일해 노동을 하며 와세다 대학 경제과에 입학했다. 같은 해 동경 조선노동조합 서부지역에 가입했고 1925년 3월 재일본 노동총연맹 동경노동조합 집행위원에 선임돼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8월엔 박득현·이상욱·박노박·박춘성·이기택·이원형 등과 조선공산당 일본 총국이 주도한 국치일 기념투쟁에 참가했다가 1929년 1월 일경에 체포됐다.

이후 1932년 9월 동경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의 형을 받고 지바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만주·천진·연안 등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독립군 모집을 전개했다.

고전면 출신인 정의용·최알밤은 1919년 고전면 주교리 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같은 마을 박영묵·이종인·정상정·정재기 등 33인과 함께 일신단을 조직하고 4월 6일 주교리 장터에서 1000여 명의 장꾼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일로 정의용은 일경에 체포돼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았고 최알밤 선생은 체포에 불응, 현장에서 총살됐다.

정재상 소장은 “전석순 선생의 일본에서의 항일행적 발굴은 이번이 처음이고 정의용 선생은 수형인명부 발굴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알밤 선생은 다수의 향토지에는 ‘최혁진’으로 나타나 있는 만큼 정부는 이분의 예우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 서동일 주무관은 “3인에 대해 면밀한 검토와 조사를 거쳐 광복절을 계기로 공적심사에 부의하고, 결과는 8월 중순께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최두열기자
하동출신 정의용 선생의 수형기록부(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태형 90도를 받았다.)/하동군/
하동출신 항일운동가 전석순 선생의 재판관련 문건 일부(1932년)
하동출신 전석순 선생의 수형인명부(일본 도쿄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지바형무소에서 징역 2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하동군/

 

최두열 hadong8050@gnnews.co.kr

<저작권자 © 경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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