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66>호미곶 둘레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66>호미곶 둘레길
  • 경남일보
  • 승인 2018.03.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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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과 호미곶이 어우러진 명품 둘레길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젊은 날이 아니라 중년의 봄날이라도 좋다.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맞이해 줄 것 같고, 처음 보는 세상과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봄이다. 그래서 떠나고 싶다. 최백호가 부른 ‘영일만 친구’의 노랫말처럼 영일만과 맞닿아 있는 호미곶 바다 기슭에서 순박하면서도 야무진 꿈을 품고 살아가는 낯선 청춘, 새로운 세상 하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설렘이 필자의 가슴 가득 차오른다. 아니 청춘을 만나기 위한 힐링 길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스스로 청춘이 되고 싶다.

호미곶(虎尾串)은 육지가 호랑이의 꼬리처럼 툭 불거져 나온 곳인데, 일제강점기엔 우리 민족의 기상을 꺾기 위해 토끼꼬리로 불렸다가, 1995년 ‘장기곶’으로 바뀐 이후 2001년 호미곶으로 최종 변경되었다.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 남사고가 집필한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의 형상은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습이다. 백두산은 호랑이의 코에 해당되고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된다’고 기술하면서 호미곶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도 국토 동쪽 끝을 측정하기 위해 호미곶을 7번이나 답사하여 이곳을 ‘호랑이의 꼬리’라고 기록한 것에서도 호미곶이란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영일만과 호미곶 해안길 모퉁이마다 숨어있는 얘기와 절경을 만나기 위해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진주에서 3시간을 달려 호미곶 둘레길 2코스 출발지인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 도착했다.

 
▲ 갈매기들의 놀이터가 된 하선대.


◇파도와 세월이 빚어낸 천혜의 비경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서기 157년), 동해안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연오랑이 바닷가 바위에서 해조를 따다가 갑자기 바위가 움직여 연오랑을 싣고 왜국으로 건너갔다. 이를 본 왜인들은 연오랑을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가 남편의 신이 놓인 바위에 올라가자, 그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를 싣고 왜국으로 건너갔다. 왜인들이 이 사실을 왕인 연오랑에게 아뢰니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었고, 왕은 세오녀를 귀비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일관은 해와 달의 정기가 왜국으로 가버려서 생긴 괴변이라 했다. 왕이 두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일본에 사자(使者)를 보냈더니 연오랑은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며 우리가 왜국으로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며,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일월이 다시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사자가 가지고 돌아온 비단을 모셔 놓고 제사를 드렸더니 해와 달이 옛날같이 다시 밝아졌다. 비단을 창고에 모셔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하였다.

삼국유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연오랑세오녀 전설에는 신라인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척 정신과 진취적 기상이 잘 드러나 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스토리텔링화 하여 천혜의 절경인 영일만 해안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일월대, 나루쉼터 산마루정자, 연오랑세오녀가 타고 간 듯한 거북바위, 초가집으로 조성된 신라마을 등 다양한 시설들로 테마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신라마을의 연오댁과 세오댁에는 왜국으로 간 젊은 주인은 아직도 돌아오질 않았고 탐방객들만 붐볐다. 콘크리트로 조성해 놓은 호미반도 둘레길을 지나자 아름다운 해안길이 나왔다.

험한 절벽과 파도로 인해 접근이 불가능했던 선바위에서 마산리까지 700m 구간에 해상 데크로드를 설치하여 그 동안 감춰져 있던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는 환상적인 해안길이 탄생했다. 왕관을 쓴 여왕 모습의 여왕바위,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바위, 구멍이 뚫린 소망바위 등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에 감탄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하선대에 이른다. 선녀는 보이질 않고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모여앉은 모습이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보였다. 하얀 옷을 입은 갈매기들은 전생의 선녀가 환생한 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앉아 있는 갈매기가 일제히 날아오를 땐 큰 꽃봉오리가 활짝 꽃으로 피어나는 모양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하선대를 지나면 또 다시 기암절벽 구간을 만난다. 자연석으로 깔아놓은 해안길과 자갈길, 그리고 출렁거리는 파도와 세월이 빚어낸 바위 조각품들, 이 모두가 천혜의 비경이다. 파도의 가락에 맞춰 느릿느릿 자갈길을 걸으면 자갈이 내는 소리와 벼랑 위 소나무에 닿는 솔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탐방객들의 마음에 이는 잡념들을 깨끗하게 지워주는 느낌을 받는다. 머리도 한층 맑아진다. 명상과 힐링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 순간, 텅 빈 마음엔 자연의 소리와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 미역을 손질하고 있는 동네 아낙들.


◇내 안의 잡념을 씻어준 자연의 소리

어촌마을에 쌓여 있는 게 잡이 통발과 마을 아낙들이 갓 따온 미역을 봄햇살에 널고 있는 풍경도 둘레길의 아름다움을 한껏 더해 주었다. 풍경에 취한 더딘 걸음 때문이었을까.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4시간이나 걸려 구룡소에 도착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린 구룡소, ‘기암절벽에는 용이 승천할 때 뚫린 9개의 굴이 있는데, 파도칠 때 그 굴로 유입된 바닷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용이 불을 뿜어내는 것 같고, 그 소리가 천지를 울리듯 우렁차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구룡소 일대의 경치가 빼어났다. 이처럼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비경이 탐방객들의 발을 묶는다. 대신 그 비경이 탐방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호미곶 둘레길을 찾은 오늘만큼은 탐방객들 모두 연오랑세오녀처럼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왕과 왕비가 되고, 자갈길을 걸으면서 듣는 자연의 소리로 마음속 잡념들을 씻어내어 영일만과 호미곶의 비경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청춘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원해 본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소 일대의 풍경.
연오랑세오녀의 집.
왕관을 쓴 모습의 여왕바위.
자연석을 깔아 만든 해안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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