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관리 할머니
주차관리 할머니
  • 경남일보
  • 승인 2018.11.15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신(명상지도사)
강신

진주 서부시장에서 산청으로 가는 길에 오죽광장이라 불리는 원형 교차로가 있다. 가운데 동산에는 이름처럼 검은 대나무와 오동나무들이 심겨있고 둘레 가장자리에는 주차를 할 수 있도록 선이 그어져 있다. 지난 여름 광장 근처에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 그 곳에 차를 세우고 9시까지 주차비를 선불로 지불하고 갔다. 모임이 길어져 9시가 훨씬 넘어 차있는 곳으로 왔는데 옆에 세워진 빨간 차 유리창에 주차권과 함께 나란히 꽂힌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때 아닌 호기심의 발동으로 메모지 내용을 읽어보니 아마도 주차 관리를 하시던 할머니가 꽂아둔 것인 듯 했다. 종이에는 주차비를 선불로 내지 않고 퇴근 시간까지 오지 않는 차 주인에게 남긴 주차 할머니의 원망과 부탁의 글이 적혀있었다.

주차 할머니의 삐뚤빼뚤하고 철자의 법칙을 벗어난 글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32루 XXXX 기사님 기다리다 감니다. 느지면 선부로 주시고 가시야지요. 8십 할머니가 밤새 기다리다 감니다. 2천은만 갈리소 밋에 바가지 안에 너주세요. 부탁드름니다. 아니면 경찰서에 어레함니다. 곡 너주세요 부탁드림니다’ 그냥 보기에도 어두운 곳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꼭꼭 눌러서 썼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애틋함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물론 주차를 하신 분도 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늦게 오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주차비를 낼 마음이 없었다면 유료 주차구역 보다는 골목 안쪽의 적당한 곳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글을 쓰는 주차 할머니의 짠한 모습을 떠올리며 차주분이 할머니의 말씀처럼 관리소 밑 바가지에 주차비 2천원을 넣어 두었기를 기대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일은 세월에 묻혀 까맣게 잊혔다가 며칠 전 산청으로 출장을 가는 길에 오죽광장에 세워진 차들을 보다가 불현듯 지난 기억이 호출되었다. 그때 그 차주 분은 늦게나마 와서 쪽지를 발견하고 주차비를 할머니 말씀처럼 관리소 밑에 넣어두었을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체 가버렸을까? 아니면 흔한 광고 전단지로 생각하고 무심히 뽑아서 버렸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 그때의 내 행동에서 작은 아쉬움 하나를 발견했다. 혹시나 모를 일이니 그 주차비 2000원을 내가 넣어두고 올 것을…, 왜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오늘도 그곳에 주차를 하시는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주차 할머니의 퇴근 시간에 맞춰주시고 혹시 늦을 것 같으면 주차비는 선부(?)로 주고 갑시다’

 

강신(명상지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