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게부대의 끈기를 되돌아 보는 평화시대
[기고]지게부대의 끈기를 되돌아 보는 평화시대
  • 경남일보
  • 승인 2024.05.0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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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암스트롱·독자, 창원시
‘끈기’라는 개념에는 유연한 정의가 있을 수 있다. 수능 전 그 긴장되고 치열한 공부시기에 적응할 수 있는 개념인 반면에 가족이랑 보기 싫은 넷플릭스 시리즈 전부를 강제로 정주행하는 것도 묘사할 수 있다. 후자가 전자보다 쉬울지 모르지만 둘 다 긴 시간이 걸리며 불편함이 야기되는 비자발적 노동이다.

비자발성은 ‘끈기’란 것의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창녕 하프마라톤에 참여해 몇 키로만 뛴 후 떠올랐다. 요관절이 이미 욱씬거렸다. 일부 진지한 주자들은 이미 중도에 포기하고 출발점으로 터벅터벅 되돌아 가고있었다. 나는 그들이 오래된 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발선에 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도 원했다면 그 ‘창피한 행군’에 합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5㎞ 지점 쯤에서 새삼스러운 넓고 넓은 세상이 열렸다. 부곡마을에 시작하는 코스는 낙동강의 웅장한 구간으로 펼쳐졌다. 기쁨 호르몬들이 내 뇌를 채워주며 불평하고 있었던 요관절에 진정하라고 전달했다. 앞서 본 부상을 입은 주자와 달리 내 몸의 흐느껴 우는 소리는 단지 태도의 문제였다. 이 굉장히 멋진 광경은 놀라운 일이었다. 강 양쪽과 산기슭 사이에 펼쳐진 넒은 공간은 불가사의 같은 계곡처럼 보였다. 이 구간은 전자제품 상가에 전시된 커다란 TV 화면의 고화질을 자랑하는 인상적인 영상으로 쓸 만했다. 산과 강을 쳐다보면서 또 다른 ‘끈기’의 기개가 마음에 떠올랐다.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지게부대 없었다면 최소한 10만명 정도의 미군 병력을 추가로 파병해야 했을 것”이라며 6·25 전쟁을 회고했다. 1950년 미군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까마득한 산꼭대기까지 전쟁 물자를 보급한 이 영웅들은 1인당 50㎏에 달하는 탄약과 전투식량을 지고 가파르고 엄한 산길을 올랐다. 사방에서 지독한 위험을 직면했다. 추산 30만 명에 달하던 지게부대원 중 2000명 이상이 전사했고 2400명 실종되었고 4000명이 부상자가 됐다. 이 장거리 등산자들은 등에 전사자를 지고 저격수로 활약했다. 전시에 긴 시간이 걸리며 불편함이 야기되는 비자발적 ‘끈기’의 잔혹한 사례다.

코스를 따라 세운 테이블에 봉사자들은 물을 따라주고, 쓰레기도 줍는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보다 평화로운 시대의 사례다. 돌아오는 길에 처음 요관절이 욱씬거렸던 지점에 도달했다. 새롭게 기운을 차리고 보니 풍선을 묶은 병원에서 나온 자선주자들과 걸어가며, 수다를 떠는 고등학생들을 지나간다. 결승선에 도달하면 맛이 있는 두부와 김치를 나눠준다. 멀리 계속 ‘끈기’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지게부대와 달리 달려야 할 의무는 없는 평화시대다.

닐 암스트롱·독자,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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