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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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4.05.0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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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 천갑녕의 한글서예 교재 ‘자연과의 대화’가 새롭다(1)
우리지역 출신 천갑녕 한글 서예가의 교재 『자연과의 대화』(1921년, 이화문화출판)를 접하고 잠시 독자가 되어 보기로 하면서 그 의미를 새겨 보고자 한다. 한글 서예가로서 아호를 솔뫼라 한 것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지금 방송이나 신문이나 할 것 없이 우리말글 쓰기나 찾기의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데 서예가로서 한글 창작시를 쓰고 한글 서체를 만들어낸 것이 자못 놀랍고 귀하다 아니할 수 없다. 책 뒤에 있는 이력을 보자.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전 출품, 대한민국 한글서예 대표작가전 출품,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 문인화 수상작가전 출품, 세계서예 전북비안날레전 출품, 진주교육대학교, 단국대학교 출강, 저서에 전통새한글, 낱말 명언집, 한국시조 500선 1.2 낱말궁체 1.2 등이 있다.

차례를 보면 제1부 서예작품(4행시, 시조, 짧은 시 2행 4행), 제2부 원작시(4행시, 시조, 짧은 시 2행 4행, 별곡, 기행문) 순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이력을 보면 한글 서체를 개발하고 전통 낱말 명언이나 한국시조를 그 서예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이런 정도의 대상에서 만족할 수가 없어서 아예 한글시의 여러 유형을 써 보고 이를 두고 마음 놓고 스스로의 서체를 실험해 온 것이다.

출판사 대표가 쓴 「발간사」를 찾아 읽어 보기로 한다. “제1부를 통하여 한글 서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선생의 힘찬 필치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작품의 내면에 스며 있는 섬세하고도 편안한 서정을 절로 느낄 수 있음에, 이는 오랜 학서(學書)와 그 천착으로 다져진 선생의 튼실한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독특한 필체는 한글 학서자들에게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며 문인화 등에 따른 화제 글씨의 활용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듯합니다.”

글씨체에서 발견되어지는 점은 모필이 가지는 성질에 맞춘 서체로서의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글씨가 가지는 흐름의 자연과 모필(붓)이 가지는 휘어지기의 자연이 서로 맞아 떨이지는 데서 이뤄지는 일관된 서체가 필법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시 독창적 미학의 수립이 아닐까 한다.

책의 제2부 원작시 부분에 들어가 한글시로서의 활자 인쇄에 힘입어 시가 가지는 가치를 따져 볼까 한다. 장르로 보면 <사행시> 41편, <시조> 4편, <짧은시> 2행 4행 7편, <별곡> 1편, <기행문>1편 도합 53편이나 된다.

<4행시>는 4.4조 8행 또는 4.4, 4.4조 4행의 두 유형을 볼 수 있다. 국내 시인 중에서는 이 4,4조 정형을 1960년대 출신 강우식(주문진 태생, 성균관대 국문과) 시인이 본격적으로 써왔다. 이를 참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예에 어울리는 리듬으로는 적합하다는 느낌을 준다.

「봄이 오는 갈목」을 읽기로 하자.

“산비탈 작은 마을/청매는 꽃눈 벌고/ 골짜기 남은 잔설/외려 다스함을/ 볕바른 산길 저기/ 새 한 무리 둥실 나니/ 눈바람에 여윈 가지/ 샛바람에 움튼다”

이 시는 4.4조 8행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4,4 연속체 4행으로 읽기도 한다. 이 4,4조 연속체를 끌고 가면 조선시대 <가사>작품이 된다.

「버들개지」를 한 편 더 읽고 뭔가 잡히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산자락에 흰눈 자취/ 저만치서 치운데/ 개울가 버들개지/ 솜털 부벼 봄 인사를/ 어린 눈 앙징스레/ 얼음바람 두렵지도/ 당당히 털 세운 맵시/오는 봄이 살갑다”

가만히 보면 두 작품 다 넷째줄 끝자리가 불안하다. ‘외려 다스함을’ 목적어에서 불안하게 끝나고, ‘솜털 부벼 봄 인사를’ 역시 목적격 조사로 끝내는 것이 기웃둥거린다. 그러나 몇 번 읽고 또 읽으면 불안한 자리가 오히려 미완성으로 특색이다. 호루라기 소리도 엉뚱한 자리에서 규칙적으로 불면 그것대로 맛이 솟아난다. 그런 불안, 불규칙이 연속된 데서 생기는 맛이 돌출한다. 돌출, 뜬검없음이 재미를 가지게 한다.

그건 그렇고 천갑녕 서예가의 4행시는 순 우리말에 연속하는 리듬이 있어서 하나의 격(格)을 이룬다. 거기다 한글이 가지는 가지런한 글자 배열이 물결 같은 밭고랑 고랑을 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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