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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플러스 <196>합천 금성산

기사승인 2018.05.23  18: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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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 정상 바위군.

금성산(錦城山·592m)의 옛 이름은 봉화산이다. 옛날 정상에 봉화대가 있었기 때문.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흔적으로 추론하면 봉화대는 자연 암반에 돌을 덧대어 쌓아 불구덩이를 만들고 주변에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구덩이는 1m 정도만 남아 있고 옆에 건물 터가 있다. 암반에는 봉수대 축조와 관련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이 산기슭에 있는 대원사라는 절 이름이 ‘봉화산 대원사’인 이유이기도 하다.

암반과 암릉 투성인 산 중에는 갖가지 형상을 갖춘 바위가 있는가 하면 암혈도 있고 그런 바위들은 얽히고설켜서 뜬돌도 있다. 숲속에서 갑자기 거대한 암벽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 웅장함에 숨이 멎는 듯 긴장감이 돈다. 정상에 서면 비로소 사방팔방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과거 산촌 사람들의 애환을 짐작할 수 있는 다랭이논이 가슴 저미게, 혹은 아름답게 다가온다. 수 백년 동안 이어진 촌로(村老)의 고된 노동을 대변해주는 듯해서 그렇고 그것이 매우 소중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생명의 시간과 세월이 만들어 낸 삶의 터전 계단식 논이 산허리를 넘어 하늘로 올라갈 듯하다. 그들이 흘린 굵은 땀방울의 흔적이자 고된 노동의 상징이고 애환이며 눈물, 다랭이논이다. 요즘 세상에 와서 유명세를 타는 건 아이러니다.

 
   
등산로: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율정마을(새터마을) 금성산슈퍼→율정리회관→밤나무단지→암릉·고인돌바위→정상석→정상 거대암릉(반환·하산)→대원사→대병로 타고 율정마을 회귀. 이외 등산로는 합천군 대병면 장단 1구마을이 있다.



들머리는 율정마을, 금성산슈퍼 옆길이다. 오전 9시 56분, 입구에 족히 수령 200년은 돼 보이는 아름드리 굴참나무 두 그루가 인상적이다. 그 앞에 팔각정자가 세워져 있다.

마을을 관통해 오르면 정면에 우뚝하게 서 있는 금성산이 보인다. 마치 설악산 울산바위처럼, 문경 주흘산처럼 조형성이 뛰어나다. 마을 한가운데 율정리 회관에 내걸린 낡은 태극기는 떨어질듯 쩔렁거린다. 회관을 벗어나 오른쪽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타래를 이뤄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아카시아 꽃 진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요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강한 자극에도 벌이 날아들지 않는 이유가 진정 휴대폰에 전달되는 강한 전파 때문인 걸까.

   
고인돌을 닮은 바위
   
부석사의 부석처럼 뜬돌


밤나무단지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소나무밭으로 연결된다. 출발 45분 만에 여행용 캐리어 크기의 돌이 쌓인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뒤로 빼꼼이 열린 숲 사이로 합천호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11시 11분, 첫 번째 능선에 올라선다. 왼쪽 방향으로 90도 꺾어 돌아가면 평편하고 아늑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짧은 오솔길 끝에 있는 바위와 암릉으로 이뤄진 골산에 닿는다. 들녘이나 평지에 있었다면 고인돌로 오해할만한 완벽한 형태의 고인돌바위, 부석사 부석처럼 뜬돌도 곳곳에 널려 있다.

새솔 순 끝에 보라색 예쁜 꽃이 핀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많은 소나무를 봤는데 솔꽃이 보라색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5월 찰나에만 볼 수 있는 소나무 암꽃이다. 십 수년동안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옷장 벽면에 그려진 꽃그림을 며칠 전에 봤다면 믿을까. 무관심하면 수백, 수 천 번을 봐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소나무암꽃
   
분재같은 소나무


소나무 얘기하나 덧붙이면 시골 어른들에게서 송구밥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춘궁기에 쌀이 떨어지면 산으로 가 부드러운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내서 쌀과 보리와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는 내용이다. 1950년대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송구밥을 먹었고 60년대 출생자는 미국에서 건너온 밀가루로 만든 밀빵을 배급받았다. 소나무가 남아 날일이 없었던 그리 멀지 않았던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오전 11시 40분, 바위를 돌아가 가장자리에 서면 장막이 열리듯 정상의 무대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사진으로 찍어 남겨야 할 이 산 최고의 절경이다. 육산이 골산을 옹립하고 있는 형상이다. 곧 아기자기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림이나 동화 속의 안식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고 앙증맞은 길이다. 가을바람에 떨어진 갈색 솔잎이 두껍게 깔려 있고 적당한 위치에 납작한 바위가 있으며 돌틈 사이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백년 수령의 소나무가 어울려서 자라고 있다. 아무개나무, 아무개돌에 아무렇게 기대어 앉아도 청학동이 부럽지 않다.

   
거대암벽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바위가 나온다. 단일 바위 국내 최대라는 현성산 입구 문바위와도 닮았다. 높아서 들어갈 수 없는 동굴도 보인다. 금성산 정상석은 바위 아래 공터에 있고 바위에 올라야만 정상이다.

정상엔 ‘소반에 꽃을 달았다’는 뜻의 금반현화(錦盤懸花)라고 하는 드넓은 암반이 펼쳐져 있다. 뭔가를 닮은 듯 한 바위들, 통천문과 봉화대 흔적, 산불감시초소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장기전에 돌입하자 의병들이 금성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줄로 악견산과 연결한 뒤 그 줄에다가 붉은 옷에 군사용 삿갓 전립(戰笠)을 씌운 허수아비를 매달아 띄웠다고 한다. 왜적이 동하는 달밤에 줄을 당겨서 신상(神像·귀신의 모습)이 난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심리전을 써 혼비백산케 했다는 것이다. 통천문에다 줄을 연결했는지는 알수 없다.

   
금성산에는 왜적 침략시 악견산과 줄을 연결해 신상을 달아 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은 금성산 줄을 매달았을 법한 구멍바위
   
합천호


푸른물 한가득 합천호가 보인다. 박찬욱 감독, 최민식(대수역) 유지태, 강혜정 주연의 영화 ‘올드보이’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어릴 적 대수의 말 한마디가 부풀려져 큰 상처가 된 유지태(유진 역)누나가 합천호 난간에서 몸을 던졌다. 지금은 경남간호고로 교명이 바뀐 인근 송계고에서도 촬영됐다. 이 학교의 독특한 건물이 영화의 복잡한 스토리에 부합했다고.

   
다랭이논


대병면 뒤뜰 계단식 논은 빈들처럼 보인다. 어린모가 자라 가을이 되면 사진가들이 이 산에 몰려든다. 황금빛 다랭이논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흔적만 남은 봉수대는 1778년(정조 2년)에 설치됐다고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인근 악견산성(嶽堅山城·경남기념물 218)과 삼기현에 소속된 봉수대라고 기록돼 있다. 그래서 간봉(間烽)이라고 한다. 합천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원사, 앞에 보이는 산이 악견산이다.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벼랑 끝 암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기분은 사실 산행객만이 간직한 아찔한 특권이자 희열이다.

이번에는 악견산과 의룡산이 머리 위에 있고 날머리 쪽 대원사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오후 2시, 공중에 떠있는 듯한 바위 전망대에 나갔다가 반환해 내려선다. 등산로를 정비한 지가 오래돼 땅에 박았던 철근 수백개가 노출돼 있어 위험했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단이었다. 지자체의 등산로 정비가 시급해보였다.

오후 2시 30분, 대원사는 자연적인 지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건물과 연못 등을 배치했다. 대웅전의 위치가 악견산이 잘 보이는 곳에 절묘하게 앉아 있다. 다만 대웅전과 범종각 등 당우를 나무가 아닌 시멘트로 만든 것은 눈엣가시였다. 절을 나와 큰길에서 율정마을로 회귀하는 데는 20분 남짓 걸렸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최창민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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